북한산의 다른 이름은 삼각산(三角山)으로 고려시대부터 천년간 사용되어왔다. 백운대, 인수봉, 만경봉의 세 봉우리가 있어서 불리게 된 이름이다.[2]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북한산보다 삼각산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렸다.
북한산이라는 이름은 서울(한양)의 북쪽(北漢)에 있어서 붙은 것이다. 한반도 북쪽의 북한(北韓)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 1915년 조선총독부의 고적조사위 사업을 시작으로 이 명칭이 관공서에서 발행하는 공식 지도에 기재되어 왔으며, 이것이 광복 후에도 관습적으로 이어져 삼각산과 북한산이 혼용되어 사용되어왔다. 그러던 1983년, 전두환 정권 당시 건설부(現 국토교통부)가 삼각산 일대를 '북한산국립공원'으로 지정한 후부터는 정부 방침에 따라 각종 방송과 신문 등 출판물, 교육자료에서 삼각산이라는 이름은 공식적으로 쓰이지 않게 되었고 민간에서도 이 영향으로 점차 쓰이지 않게 되었다.
지질학계와 사학계에선 "북한산은 조선총독부에서 멋대로 붙인 지명이며, 따라서 일제 당시 국토법의 잔재를 폐기하고 본래의 삼각산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삼각산 1000년VS북한산 100년’…북한산 개명 논란 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북한▪︎북한산이라는 지명은 고대 시절부터 한강의 이북 지역, 즉 한산(漢山; 서울)의 북쪽 일대를 가리키는 단어(北漢山)였다.[3] 사용 빈도는 조선 후기부터 증가했는데, 삼국시대 시절에도 한강 이북을 가리키는 말로 존재한 기록이 있다. 신라가 한강 하류를 차지한 후 555년, 진흥왕이 직접 북한산 일대(한강 이북)를 순행하는 것을 기념하는 내용의 진흥왕 순수비를 설립했으며, 삼국사기의 이 기록이 북한산이라는 지명이 최초로 역사에 등장한 사례다.[4] 신라가 한강 하류에 한주라는 행정구역을 새로 만드는 등 새로운 지명을 만들었기 때문에 북한산이라는 명칭이 진흥왕 때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논란이 되는 것은 일제강점기 이전에도 북한산이 곧 삼각산이었냐, 아니면 북한산은 서울 한강 이북의 산들을 뭉뚱그려 칭하는 것이었냐는 것이다.
천년간 이어져온 명칭인 만큼 정부로부터 폐기되었음에도 일상에서 꽤 자주 발견할 수 있다. 비교적 최근에 명칭 정리가 끝난 만큼 중년층부턴 삼각산이라고 해도 대부분 알아듣기 때문. 꼭 중장년층이 아니라 신세대층에서도 역사를 알고 있는 이들 중엔 한국과 반세기 넘게 군사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북한의 영향으로 '북한'산이 주는 어감탓에 본래의 삼각산 쪽을 선호하는 이들도 많은 편이다. 한편 산이나 지리에 관심이 없는 청소년이라도 알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한국의 학생들에게 친숙할 시인 심훈의 〈그날이 오면〉과 김상헌의 시조 〈가노라 삼각산아〉에 나오는 삼각산이 바로 이 북한산이기 때문이다. 또한 대한민국 육군 수도방위사령부의 부대가(歌)는 삼각산이라는 명칭을 채택했으며, 부대마크에도 서울의 랜드마크 삼각산을 형상화한 삼각형을 그려넣었다. 대한민국 해군은 미합중국 해군이 쓰다 민간 불하한 PC 4척을 구매한 뒤 그 중 3번함인 PC-703을 삼각산함으로 명명하기도 했다. 고서에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 조선왕조실록, 고려사, 여러 고전 시가와 시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울특별시 강북구에서는 '삼각산'이라는 명칭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삼각산동, 서울삼각산초등학교, 삼각산중학교, 삼각산고등학교가 대표적이고 미양 풍림 아이원은 주민 투표를 통해 삼각산 아이원이 되었다. 삼각산 도당제, 삼각산-우이령 마라톤 대회 등 삼각산이 들어가는 행사들도 볼 수 있다.
북한산은 신라에선 국가에서 명산대천으로서 제사를 지낸 장소 가운데 하나였고, 대한제국 시대에도 국가에서 제사를 지내던 다섯 명산인 '오악(五嶽)' 중 하나에 들었다.[5] 북한산 인수봉의 옛 이름은 어머니가 아이를 업고 있는 것과 같은 형상이라는 뜻에서 부왘'부아악(負兒嶽)'이었다.[6] 조선 시대에 북한산은 화산(華山), 화악(華岳)이란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서울(한양)의 진산(鎭山)이기도 하다.
3. 지질